요즘엔 전 세계적으로 마음수련을 많이 찾고 있는 것 같다. 명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미국, 프랑스, 스웨덴, 심지어 요가와 명상의 나라인 인도에서도 찾아와서 마음수련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먼 타국의 땅까지 와서 명상을 하는 것이 그들에겐 어떤 의미일까, 종종 생각해보곤 했었다.
마음수련이 생긴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했던 시간동안, 어떤 문제나 부작용, 피해사례가 있었다면 이렇게 긴 시간동안 이어지지도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무엇이든지 투명하고 진정성있는 것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연예인들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무엇인가 숨기고 속이고 대충 넘어가던 것들이 용서받지 못하는 요즘이다.
그런데 간혹 “나 마음수련 하고 더 안좋아진 거 같애… 이거 부작용인가?” 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보아왔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사람도 있었고 진지하게 실망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안좋아졌는데?”라고 물어봤을 때 들었던 대답들과 그런 부작용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풀어내보려고 한다.
“예전에는 착한 척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못하겠어요. 친구가 저보고 왜 이렇게 무뚝뚝해졌녜요”
생글생글 웃는 인상을 가졌던 지인은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녀가 마음수련을 한지 3개월이 조금 넘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나와 같은 센터를 다니던, 나보다 2살 어린 친구였다. 왜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늘 웃고 있지만 속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마음은 울고 있는데 겉으로는 괜찮은 척, 씩씩한 척, 착한 척을 했고 어느 누구에게도 속 마음을 터놓는 법을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자기 친구들한테 무슨 일 때문에 힘들다고 얘기하면 ‘넌 원래 착한 애잖아. 니가 참고 넘어가,’ ‘그래도 그렇게 시무룩해있으면 어떡해 다시 웃으면 힘날꺼야’라는 대답만 들었다고 했다. 그게 답답하다고 했다. 처음으로 센터에 와서 자기 마음을 털어놓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펄펄 물이 끓는 냄비를 아무리 뚜껑을 덮어도 덮이지 않는다. 사람 마음도 그렇다. 인간이 인지하는 마음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심리학 연구도 있듯이, 90%는 무의식이고 나머지 10%만 겉으로 드러난다. 아무리 겉으로 행복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해도 속에 쌓여있는 마음들이 정리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곪아서 터지고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녀는 마음수련 명상을 하면서 자기 속의 마음을 부지런히 비워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마음을 마주하기도 하고 그동안 얼마나 ‘행복한 척’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는지 그 모습도 직시하기 시작했다.
“겉 껍데기로만 살았더라고요. 진짜 내 자신을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내기가 무서웠던 것 같아요. ‘난 사실 친절한 사람이 아니야. 원래 이런 사람이야’ 라고 내놓으면 다 떠나갈까봐 두렵고 인정받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마음에 계속 포장을 하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그러면서 나를 잃고 있었더라고요.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싶은 마음으로 30년을 살아온 것 같아요. 이제는 그래도 조금 용기가 생겨요. 나 자신을 마주할 용기요.”
그녀에게도 과도기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내가 부르는 ‘과도기적 순간’이란, 언뜻 사람들이 보기에 ‘마음수련 부작용’처럼 보일 수 있는 순간을 말한다. 자기의 마음을 인지하고 버려나가는 과정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자기 모습이 나타날 때가 있다. 겉으로 웃음짓던 웃음기가 사라진다던지, 늘 배려가 몸에 베어있던 분이 그런 행동을 멈춘다든지 하는 행동들이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엔 ‘착하던 사람이 못되졌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얘기를 실제로 듣던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평소에 ‘착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많이 듣던 사람들이다.
그런 시기가 지나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동들’이 나온다. ‘무뚝뚝해진 것 같다’라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던 그녀도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건 예전의 가짜 웃음이 아니었다. 마음 속 깊이에서부터 환하게 웃는 미소였다.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해보였다.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